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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라이프 | “인간이 줄 수 없는 영원한 즐거움은 성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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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노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4-17 06:13 조회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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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순복음삼마교회는 출애굽기 25장에 나오는 성막을 중시하며 훈련한다. 인간이 줄 수 없는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이 성전에 있기 때문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 거리는 한산하고 사람들은 침울하다. 경제적으로 최악이라는 전망이 계속 나온다. 이처럼 암울한 때에 소망을 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성경은 여기에 답을 준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2)

우리가 처한 환경을 이기기 위해선 성전에서 예배를 통해 주시는 에너지를 받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성막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백성에게 군사적 전술이나 광야의 지형을 가르쳐주시지 않았다. 성막을 건축하고 예배드리는 법을 훈련하셨다. 그들이 성막에서 예배드릴 때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나타나 보호했다.

성막 생활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성막은 크게 세 부분으로 돼 있다. 뜰과 성소, 지성소다. 목회적으로 우리의 신앙은 세 단계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성전 뜰에 가기 위해서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성막문은 동쪽을 향해 하나만 설치돼 있는데, 이는 구원의 길이 오직 예수뿐이라는 사실을 말한다.(요 10:9) 성도가 구원론에서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오직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라는 사실을 반드시 훈련해야 한다.(행 4:12)

모세오경 훈련을 하기 전, 15년 동안 목회하면서 성경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결과적으로 바리새인만 만든 꼴이었다. 열심히는 했지만 서로 지쳐가고 있었다. 결론은 성막 생활이 ‘깨닫는 삶’이라는 것이었다. 예수님도 깨닫는 마음이 좋은 옥토라고 하지 않았는가.(마 13:23)

성막문의 색깔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담겨있다. 동쪽 문은 자색 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옛날부터 자색은 왕이 입은 옷의 색깔이었다. 성막은 창조주이신 왕이 있는 곳이기에 왕을 만나는 것처럼 준비된 마음으로 들어가야 한다.(눅 19:38)

성막문은 홍색 실로 수 놓여있다. 홍색은 보혈의 색깔이다. 성전은 ‘예수님의 피’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 들어가면 속죄제 속건제 소제 번제 화목제가 드려질 때 수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그런데 그 피는 예수님의 생명이자 우리를 사랑하셨던 희생의 상징이었다. 성막에 들어가면서 우리가 느끼고 맛봐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신 ‘십자가 사랑’을 말한다.(엡 1:7)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로 이뤄진다. 사랑의 실천은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다.(벧전 4:8) 우리가 남의 허물과 죄를 덮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는 판단과 정죄가 가득할 것이다. 세상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세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율법도 세월이 갈수록 많아졌고 세상 법도 많아졌다.

순복음삼마교회는 율법과 복음을 해석할 때 “율법이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이라면 복음은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조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허물을 덮어주셨다. 주님은 사건 현장을 보면서 판단과 정죄는 자신의 사역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요 8:15)

사랑하면 남을 쉽게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이다.(요 13:1)

교회에 나갈 때는 만물의 주인이 계시는 곳이요, 헤아릴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주심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곳임을 명심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합의에 따라 교회 문을 닫았던 수많은 교회가 있다. 방역 7대 준칙을 지키며 예배자로 나갔던 교회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옳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모두 각자의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판단은 주님의 몫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 있다면, 서로 이해하고 아픈 현실에 대해 서로 긍휼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 보혈을 믿는 진정한 자세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를 무조건 비방하고 공격할지라도 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세상을 위해, 이웃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이 보혈을 힘입은 성도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코로나19로 절망하는 이들에게 위로자가 돼야 한다. 교회만이 진정한 소망이 있고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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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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