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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3) 시편 1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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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은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1-09 21:50 조회1,8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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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3) 시편 119:74 

<본문;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은 주의 말씀을 바라고 소망하는 성도의 모습을 보며 기뻐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정말 다른 성도가 주님을 기뻐하는 것을 보면 기쁜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맞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다소 심한 책망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들이 서로 믿음을 자랑하며 잘난 척하고 다른 성도들을 시기 질투하고, 더군다나 바르지 않은 교리를 받아들였다는 나쁜 소식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서신을 보내고 나서 약간 후회했습니다.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아서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편지를 받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회개하고 돌이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고후7:8-9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바울은 자기가 심한 말을 한 책임에서 벗어났다는 것 때문에 기뻐한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회개하고 바른 신앙의 길로 돌이켰다는 그 사실을 기뻐했습니다. 바울의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은 오직 성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전도한 사람들이 하나님 은혜로 변화를 받고 돌이킬 때 큰 기쁨을 누릴 수밖에 없습니다.

<살전2:19-1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기쁨이란 혼자 느끼기에는 매우 아까운 마음입니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홀로 살고 있노라면 어떤 기쁜 일이 있기도 어렵지만 혹시 기쁜 일이 있더라도 가족, 친구, 이웃 등 그 누구와 함께 그 기쁨을 나누지 못하므로 그 기쁨의 크기는 매우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집니다.

 

기쁨이 자기 자신을 초월하게 되면 다른 이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보며 느끼는 그의 기쁨이 매우 컸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동안 그렇게 고생스러워도 기꺼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기쁨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떻게 해서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요? 계명을 따르십시오. 사랑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이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시며 저와 여러분을 영원한 기쁨의 세계로 초청하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15:9-11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잘 지킴으로써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그 기쁨이 얼마나 크고 충만한지 잘 아시고, 그처럼 저와 여러분도 주님께서 주신 계명을 잘 지키면 주님과 같은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저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얻고 기뻐하는 것으로 기뻐하셨고 이 일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기꺼이 목숨을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대로 저와 여러분이 서로 사랑한다면 다른 사람의 기쁨으로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누가 사랑한다면서 다른 사람이 잘 된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겠습니까? 기뻐할만한 일이 있을 때, 입술로는 축하해주면서도 속으로는 질투한다면 그 마음에 기쁨이 깃들 수 없습니다.

 

시기심과 질투심을 버리십시오.

그것들은 저와 여러분을 기쁨의 세계로 가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이런 나쁜 마음은 모두다 소유욕에서 시작 되는데, 시기심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상대가 소유 했을 때 생기고, 질투심은 내가 받고 싶은 것을 상대가 받았을 때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시기하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셨으니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시기심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자녀의 사랑을 받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고라 자손들은 같은 레위지파이면서도 모세와 아론 자손이 제사장 직분을 맡은 반면에 자신들은 성전 관리를 맡게 된 것에 대한 불만이 생기면서 반역했다가 징계를 받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이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지셨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니 매우 미워했습니다.

고라 자손이든 바리새인들이든 모두 다 시기심과 질투심 때문에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 재산 절반을 미리 상속 받은 후 다 팔아서 객지로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가진 재물을 다 탕진하고 굶어죽을 지경이 되자 아버지 집에서 머슴이라도 살겠다는 심정으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잃어버린 것 같던 작은 아들이 돌아오니 매우 기뻤습니다. 그래서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형은 불만입니다.

아버지 말에 늘 순종했는데 염소 한 마리 안 잡아 주시던 아버지가 오히려 집을 나가서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위해서 잔치를 여신다는 점 때문에 질투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동생이 돌아왔으니 기뻐해야 하지만 그런 마음이 시기 질투심으로 훼방을 받습니다. 형은 기쁨을 잃었습니다.

 

한 조직, 가정. 일터, 직장 등, 그 안에서 시기와 질투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변화를 받고 구습에서 벗어나 거듭난 사람들이 모인 교회라면 시기와 질투심은 없어야 맞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자체가 교회의 목표이고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은 성도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누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기뻐하는 것을 시기 질투하겠습니까?

하늘의 기쁨은 무한하게 공급되니 자신도 그렇게 섬겨서 기쁨을 누리면 되지 다른 사람이 기쁨을 누리는 꼴을 못보고 미워한다면, 그 마음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마음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도록 교회에 참여된 성도로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기뻐하고, 성도와 서로 교통하고, 목회자와 좋은 관계를 맺고, 다른 성도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위해서 늘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시기와 질투심이 생길 수 없는 것이 너무 당연합니다. 미움도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점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많이 누리는 그로 인하여 자신도 그와 같은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교회에서 자신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어떤 중요한 직분을 맡게 되었는지 등에 관심을 많이 가지면서, 신앙생활을 그런 차원으로 하는 사람은 반드시 시기심과 질투심에 빠지게 되고 참된 기쁨을 누리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은,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도 기쁨을 누리게 되지만,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을 보고서도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잘 섬기며 충성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대신에 눈이 돌아가고 시기와 질투심이 생긴다면 그는 믿음의 참 기쁨을 모르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요?

적어도 목회자인 저는 여러분이 교회를 잘 섬기고 그로 인하여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매우 기쁩니다. 여러분도 교회를 사랑한다면 당연히 저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요.

 

저는 여러분께서 교회가 잘 되는 것을 소망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하여 참아내고, 교회가 잘 되는 것을 통해서 누리는 기쁨을 잘 알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더욱 낮추는 모습을 보면서 기쁩니다. 참아내고 낮추는 기쁨을 아시는 여러분의 믿음과 기쁨을 저도 느끼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기쁨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추구하지 마십시오.

자칫하면 반드시 시기와 질투심으로 인하여 참 기쁨을 잃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마음속에서 시기와 질투심을 몰아내기 위해 계속 싸워야합니다. 그 때,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영혼을 사랑하시고 그를 구원하시는 구주의 놀라우신 능력과 은혜로 인하여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저 사람도 구원하셨구나, 감사합니다.” 라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사람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아름답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른 영혼의 구원에 자기 목숨을 걸었던 이유도 기뻤기 때문이고 예수님께서도 목숨을 내어 주시면서 사명을 감당하신 것도 구원받을 성도로 인하여 기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기쁨을 가로막고 훼방하는 시기심과 질투심을 없애버리십시오.

교회 안에서도 그렇고 교회 밖에서의 모든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인으로서 품위를 지킬 수 있습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모습을 잃지 않고 사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로 구원을 받게 된 그 믿음을 잘 보존하고, 복음을 위하여 남겨진 자로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기쁨의 열매를 거두며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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