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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0:25-33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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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은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7-16 07:52 조회85회 댓글0건

본문


 

 

 

<본문: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

 

참된 성도는 경건하지만 은혜가 풍성하며, 자유롭지만 절제하며, 영광을 위해 싸우지만 사랑하며, 순종하지만 맹종하지 아니합니다.

율법에서의 자유는 옳은 말입니다. 그렇지만 율법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자유를 외치면 방종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는 옳은 말입니다. 그렇지만 참된 하나님의 정신을 모르는 사람이 영광을 외치면 많은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주게 됩니다. 무지한 맹종과 참혹한 테러가 영광 뒤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경건한 삶을 살아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죄사하심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경건은 율법으로의 회귀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 일부는 이방인들의 제사 의식에 참여하면서도 가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이방 신을 자신들의 하나님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귀신에게 비는 제사에 참여하면서 자유 했습니다. 이런 모든 행동들은 무지함에서 비롯된 방종이지 자유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 모습으로는 이방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 보여줄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명을 받고 여기까지 인도 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도 마찬가지 형편이었습니다. 부르는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이었지만 참 된 하나님을 찾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읽었지만 하나님 나라 대신에 세상 나라에 더 큰 관심을 가질 뿐이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간절한 사모함도, 구원에 대한 감사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는 성경 해석, 무지함에서 비롯된 맹종, 불신앙에 가까운 신앙생활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리지 못했고, 참 선교에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항상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끊어 버리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 온유하신 사랑은 저를 끊는 것이 아니라 제가 잡고 있는 세상을 끊어 버리셨습니다. 육의 피할 길을 멸하시고 영혼의 피할 길을 내셨습니다. 이런 모든 은혜로 닫혔던 귀와 눈을 여셨고, 스데반이 보았던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받는 모든 분들이 동일한 은혜를 받아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은 오직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해 오셨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미리 택정하셨던 당신의 자녀들을 구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 때문에 죽음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4: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 아니겠습니까? 본문의 말씀대로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때 유의할 것이 있습니다. , 하나님 성품의 본질이 나타나지 않는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영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종교가 정치에 개입할 때 앞세웠던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구호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억울하게 피를 흘렸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도의 모든 삶의 방향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명분과 잘 맞을 때 영적 충만함과 힘을 얻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사랑이 없는 모든 충만은 많은 경우 이웃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한 예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명분이라도 다른 지체를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 눈의 티끌을 보지 말고 네 눈의 들보를 보라고 지적하신 주님의 책망을 외면한 이런 행동이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자유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도 아닙니다. 비판이란 그냥 자기 자신이나 다른 지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무지함과 사랑 없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앞 세워서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것은 영광이 아닙니다. 살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앞세워서 불의의 재물을 취하는 것은 은혜나 축복이 아니라 도둑질이요 저주일 뿐입니다. 이런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 시대는 특히 불신앙의 시대입니다.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가장 험한 싸움이 필요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런 위험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보여줄 선교 도구로 택정 받았습니다.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 없이는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특히 세상의 유혹과 불의와의 싸움을 싸우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합니다. 불의의 재물을 탐하지 마십시오. 불의의 영광도 취하지 마십시오.

 

진심으로 권면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구호를 외칠 때 특히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구호는 하나님의 뜻과 멀어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을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만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전해준 말씀이 생각납니다.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리스도의 존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드릴망정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자가 주님을 존귀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이 내 몸을 통해서 존귀하게 나타내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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